빌드 인 퍼블릭의 역설
AI 시대의 카피캣은 기능뿐 아니라 문구, 창업 스토리, 운영 감각까지 베낍니다. 왜 빌드 인 퍼블릭을 계속해야할까요?
빌드 인 퍼블릭은 여전히 좋은 전략입니다.
하지만 AI 시대에 이 전략은 예전과 전혀 다른 위험을 안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만드는 과정을 공개하면 팬이 붙고, 초기 유저가 생기고, 동료 창작자와 연결됐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내가 고생해서 다듬은 문제 정의, 문구, 알림 타이밍, UX 흐름, 심지어 왜 이 제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누군가의 학습 재료가 됩니다.
저도 알림 타이밍과 문구까지 교묘하게 닮아 있는 복제를 볼 때 허탈합니다. 기능이 비슷한 것보다 더 기분이 이상한 건, 내 판단과 감각이 통째로 값싼 레퍼런스로 소비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저는 빌드 인 퍼블릭을 완전히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작업물은 블로그 메인에서 숨기거나, 링크를 아는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보여주는 쪽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공개 자체가 마케팅이면서 동시에 무료 시장 검증 자료이기 때문에 보일건 보여야하거든요.
최근 해커뉴스, 레딧, 인디 해커스에는 비슷한 하소연이 반복해서 올라옵니다. 바이브 코딩과 AI 에이전트가 생산성을 올린 건 맞지만, 남의 제품을 복제하는 속도와 뻔뻔함도 같이 올려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이런 식입니다.
한 개발자는 2년 동안 다듬은 엔터프라이즈 RAG 아키텍처를 오픈소스로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창업자가 그 저장소를 자기 AI 에이전트의 대표 작업물처럼 걸어두고, 마치 자기 시스템이 혼자서 만든 결과물인 것처럼 투자자와 고객에게 설명했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원작자가 느낀 감정은 분노보다 허탈감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내가 카피캣들의 무료 R&D 부서가 된 것 같다는 표현이 왜 나오는지 바로 이해됐습니다.
어떤 개발자는 앱을 런칭하면서 이 제품을 왜 만들게 됐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스토리를 레딧에 공유했습니다. 며칠 뒤 앱스토어에는 기능만 비슷한 게 아니라, 그 개인적인 서사까지 AI로 윤문해 자기 이야기처럼 붙여 넣은 카피앱들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기능 복제도 기분 나쁘지만, 창작의 출발점이었던 이야기까지 가져가 버리면 허탈감은 훨씬 더 큽니다.
이 지점이 예전과 다릅니다.
이전의 카피캣은 주로 기능을 베꼈습니다. 지금의 AI 카피캣은 기능, 문구, 포지셔닝, 창업 서사까지 한꺼번에 흉내 냅니다. 표면만 비슷한 게 아니라, 제품이 가진 맥락을 통째로 얕게 복제합니다.
빌드 인 퍼블릭의 역설
그렇다고 빌드 인 퍼블릭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초기에는 강력합니다. 만드는 과정을 공개하면 피드백이 붙고, 잠재 고객이 모이고, 스스로도 더 꾸준히 밀어붙이게 됩니다. 작은 창작자에게는 이것만큼 값싼 마케팅도 드뭅니다.
문제는 무엇을 어디까지 공개하느냐입니다.
해외 솔로프러너 커뮤니티에서도 이제는 빌드 인 퍼블릭을 미덕이 아니라 단계별 전략으로 봅니다. 초반에는 공개가 성장의 연료가 되지만, 수익과 전환이 증명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카피캣의 레이더에 잡히기 쉽다는 겁니다. 인디 해커스에서는 아예 일정 수준 이상의 MRR이 나오면 수익 공개를 멈추고, 제품 URL을 덜 드러내는 흐름까지 정리한 글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말은 결국 이 뜻입니다.
지표와 수익을 공개하는 순간, 나는 팬에게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검증 끝난 시장을 건네주게 됩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지 않는 사람일수록, 누군가 이미 돈이 된다고 증명한 순간 가장 빠르게 달려듭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수익만 쫓는 사람에게 빌드 인 퍼블릭은 영감이 아니라 표적 목록이 되기 쉽습니다.
예전의 빌드 인 퍼블릭이 투명성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선별적 공개에 더 가깝습니다.
공개는 하되, 복제되면 바로 타격이 큰 부분은 남겨두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작업물은 숨긴다
제가 중요한 작업물을 블로그 메인에서 숨기거나 제한적으로 보여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 중요한 작업물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문제를 푸는 방식, 사용자 반응을 읽는 기준, 어떤 순서로 기능을 배치했는지, 어떤 문구를 어느 타이밍에 띄웠는지 같은 운영 감각이 들어 있습니다. 이건 결과물보다 과정이 더 값진 자산입니다.
둘째, 공개된 작업물은 너무 쉽게 AI의 재료가 됩니다.
스크린샷 몇 장, 설명 몇 문단, 사용자 반응 몇 줄만 있어도 누군가는 비슷한 랜딩페이지와 비슷한 메시지를 하루 안에 조합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베끼려면 시간이 든다가 아니라, 베끼려면 마음만 먹으면 된다에 가깝습니다.
셋째, 중요한 작업물은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맥락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편이 낫습니다.
채용, 협업, 제안, 소개처럼 상대가 분명한 상황에서는 링크 기반으로 보여주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그래야 설명도 같이 따라갈 수 있고, 괜한 오해나 얕은 복제를 줄일 수 있습니다.
넷째, 저는 글과 작업물을 같은 층위로 보지 않습니다.
글은 공개해서 생각을 남기는 쪽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작업물은 다릅니다. 특히 아직 실험이 끝나지 않았거나, 실제 운영에 연결된 자산이라면 공개가 곧 노출이 아니라 유출에 가까울 때도 있습니다.
카피캣은 오래 못 버틸 확률이 높다.
해커뉴스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결론도 결국 비슷합니다.
카피캣은 빠르게 복제하지만 오래 운영하지 못합니다. 당장의 빠른 수익을 원할 뿐, 제품에 대한 장기적인 애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버그가 생기고, 트렌드가 바뀌고, 사용자의 요구가 달라질 때 여기서 차이가 벌어집니다.
AI는 코드를 짜고 화면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자가 오랜 시간 고민하며 다듬은 취향, 유저를 배려하는 디테일, 쾌적한 백엔드 최적화, 운영하면서 계속 수정해 온 판단까지는 복제하지 못합니다. 결국 살아남는 건 코드 그 자체보다 특정 도메인에 대한 이해도, 문제를 보는 시선, 끝까지 고치는 태도입니다.
AI 시대에는 코드만으로는 해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해자는 창작자 그 자체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왜 만들었는가.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책임질 수 있는가. 결국 여기서 차이가 납니다.
다만 예전처럼 전부 꺼내놓지는 않을 겁니다. 생각은 더 공개하되, 중요한 작업물은 더 신중하게 다룰 겁니다. 저는 제 감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더 오래 운영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고, 흔들리지 않는 제 기준을 쌓아가려 합니다.
지금은 그게 AI 시대의 1인 창작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