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캐치볼
공감, 배려, 관심 안줄거면 소통할 이유가 없다.
대화는 캐치볼과 같다. 혼자 공을 많이 던지거나, 잡을 수 없는 공을 던지거나, 공을 안 던지는 등 상대가 반응하기 어렵게 공을 던지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받아줘야 캐치볼이다
캐치볼은 던지고 받는 게 전부다. 좋은 대화도 똑같다. 한 사람이 공을 던지면 다른 사람이 그걸 받아서 다시 던져준다. 질문은 던진 공이고, 대답은 그 공을 받아주는 일이다.
문제는 상대가 내 질문을 슬쩍 건너뛰고 곧장 자기 얘기로 넘어갈 때 생긴다.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내가 던진 공은 그대로 땅에 툭 떨어진다. 질문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어긋나는 방식은 보통 둘 중 하나다. 한쪽은 공을 너무 많이 던진다. 말은 잔뜩 거는데 받아주는 건 적고, 하나를 던지면 곁가지가 우르르 따라 나와서 상대가 미처 받을 틈이 없다. 다른 한쪽은 공을 거의 안 던진다. 말수도 적고 자기 얘기도 잘 안 꺼내니, 애초에 주고받을 공 자체가 부족하다.
떨어진 공은 거절이 아니다
여기서 꼭 하나 짚고 싶다. 이렇게 떨어진 공은 '거절'이 아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나랑 좀 이어지자"는 작은 신호를 보낸다. 상대는 거기에 돌아서거나, 못 본 척하거나, 날을 세운다. 그런데 어긋나는 대화에서 떨어진 공은 대부분 '날을 세운 것'이 아니라 '실수로 못 받은 것'에 가깝다. 미워서가 아니라, 그냥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공 많이 던지는 사람은 원래 그렇게 던지고, 조용한 사람은 원래 그렇게 조용하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상대가 내 공을 자꾸 흘려도, 그게 나를 밀어내는 신호는 아니라는 것. 이걸 알고 나면 같은 장면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물론 깨닫기 전엔 화가 왕왕 난다.)
관계에는 부채가 쌓인다.
대화가 저렇게 줄줄 새는데도, 신기하게 사이는 잘 안 깨진다. 특히 오래된 관계가 그렇다. 겉으로 오가는 말만 보면 거의 엉망인데, 어쨌든 관계는 굴러간다.
그런데 이걸 "거 봐, 우리 사이 멀쩡하잖아"로 읽으면 곤란하다. 솔직히 말하면, 사이가 정말로 멀쩡할 리가 없다. 공이 자꾸 떨어진다는 건 애초에 둘의 코드가 잘 안 맞는다는 뜻이니까. 던지는 결도, 받는 결도 서로 다른 거다.
그런데도 겉이 잠잠해 보이는 건, 보통 한쪽이 흐린 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떨어진 공이 영 거슬리고 마음에 걸리는데도, 굳이 들추지 않고 그냥 넘기는 거다. "쟤네 나쁜 애들은 아닌데, 좀 모자란 거지 뭐, 그냥 참고 가자." 다정하게 들리는 이 말은, 뒤집으면 한쪽이 계속 삼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겉이 조용하다고 괜찮은 거라 착각하면 안 된다. 마찰이 없는 게 아니라, 누군가 그 마찰을 혼자 떠안은 채 못 본 척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떨어진 공이 거절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다.
결국 지치죠.
그런데도 어느 날 문득 "예전만큼 재미가 없네" 싶은 순간이 온다. 보통 우리는 이 느낌의 원인을 상대에게서 찾는다. "쟤네가 대화를 못해서"라고. 하지만 이 느낌은 누가 대화를 못해서라기보다,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
신호의 정체는 대개 이런 것들이다.
- 편한데 설레지 않는다. 안정감은 충분한데 새로움이 없다. 오래된 사이가 흔히 거치는 밋밋함이다.
- 한 사람만 지친다. 흐트러진 대화를 매번 수습하는 사람이 있다. 떨어진 공을 늘 혼자 줍다 보면, 그 피로가 "재미없다"는 말로 새어 나온다.
- 익숙한 채 멈춰 있다. "참고 가자"만 반복하면 너그러워질 뿐, 더 깊어지진 않는다. 받아주기만 하고 더 들어가지 않으면, 안정은 어느새 정체가 된다.
- 같이 만드는 게 없다. 대화가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건 둘이 함께 새 이야기를 쌓아 올릴 때다. 각자 자기 얘기만 늘어놓으면, 정은 깊어도 함께 만드는 게 없다.
뭔가 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은, 내 권태가 이 중 어느 쪽인지 가려내는 것이다. 한 사람만 공을 줍느라 지친 거라면 그 역할을 좀 내려놓으면 되고, 같이 만드는 게 없어서라면 그런 시간을 일부러 만들면 된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도 정반대가 된다.
받아주기만 하는 게 답은 아니다
"그냥 참고 가자"가 늘 좋은 태도인 건 아니다.
일단 받아주고 보는 태도는 때때로 성장을 조용히 막는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과 '더는 기대 안 하고 포기하는 것' 사이의 선은 생각보다 얇다. 받아주는 게 체념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공을 계속 떨어뜨리면서도 "그래도 우리 사이 좋잖아" 하고 넘어간다. 대화는 안 되고 있는데, 잘 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소통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 됐다고 착각하는 것'일 때가 많다. 자꾸 어긋나면서도 오래 버텨낸 관계의 좋은 점은, 서로의 모자람을 솔직하게 바라보면서도 그걸 흠잡지 않고 "평생 안 바뀔 그 사람의 결"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나를 잘라 맞추는 대신 내 품을 더 넓혀서 상대를 안아 들이겠다는 마음 — 이건 사람 사이가 닿을 수 있는 꽤 높은 자리다.
다만 한 가지는 덧붙이고 싶다. "품을 더 넓히면 되지"가 소통의 부재를 덮는 만능 변명이 되어선 안 된다. 진짜 성장은 한 사람만 거대한 원을 그려 모두를 끌어안는 희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흩어지는 대화를 잠깐 멈춰 세우고 "나는 네가 내 질문에 답해줄 때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라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결말은 권태를 억지로 '고치는' 게 아니라, 둘 중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품은 더 들지만 더 자주 서로에게 가닿는 '큰 원'인가, 새로움은 적어도 마음만은 완전히 편한 '편안한 원'인가. 만약 그 재미없음이 "나는 더 원해"라는 신호라면, 그 마음은 정당하다. 그건 상대가 모자라서 생긴 흠이 아니라, 더 깊이 닿고 싶다는 건강한 바람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참고 가자' 밑에 묻어두지 말자. 오래 반복해온 그 다정한 체념이, 정작 당신이 하고 싶은 한마디를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한마디가, 어쩌다 한 번씩만 터지던 깊은 대화로 들어가려고 일부러 던지는 첫 번째 공일 것이다.